경기침체(Recession), 이른바 ‘R의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경제는 올해 1분기에 –0.2%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주요 19개국 중 꼴찌이다. KDI는 올해 전망치를 0.8%로 하향 조정했고, 일시적 경기둔화를 넘어 구조적 침체가 시작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출장으로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현지에서 치밀하게 미래를 설계하는 정부, 과감하게 투자하는 기업, 창업에 뛰어드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전 세계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데, 우리는 어떤가? 주력산업 노후화와 신산업 부재, 혁신기술 경쟁력 저하까지 맞물려 성장엔진이 꺼져간다. 혁신의 공백이 성장의 정체로 이어진 것이다.

정체는 곧 추락이다. 더 늦기 전에 ‘침체(Recession)의 R’을 ‘재도약(Rebound)의 R’로 바꿔야 한다. ‘공포의 현실’을 ‘희망의 미래’로 바꾸는 일이다. 그 최선의 길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맞은 산업구조 재편(Renovation)이다. 이미 경쟁국들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경제안보를 위해 국가전략 차원의 산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특히 민간의 혁신역량과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를 결합해 시너지를 노리는 미국의 사례가 눈여겨볼 만하다.

세계 최고의 혁신생태계를 보유한 미국,
첨단산업에 대한 천문학적 정부 지원으로 시너지 기대

미국은 수십 년 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 생태계를 구축해 첨단산업 혁신을 선도해 왔다. 대학, 연구소, 벤처캐피털, 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실리콘밸리가 그 아이콘이다. 스탠퍼드 대학과 UC버클리는 기술 기반 창업의 요람이 되었고, 풍부한 벤처 자금과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재가 더해져 애플, 구글, 메타, 엔비디아 같은 첨단 혁신기업이 탄생했다. 혁신이 혁신을 낳는 선순환이 정착된 것이다.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 역시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빨리, 자주 실패하라(Fail fast, Fail often).” 실리콘밸리 정신을 대표하는 말이다. 이곳에서 실패는 끝이 아니라 더 나은 시도의 과정이다. 헛스윙을 두려워하면 홈런을 칠 수 없다. 실리콘밸리의 도전정신은 수많은 혁신기업의 탄생과 기술 진보를 이끌었다.

이에 더해 미국 정부는 2022년부터 반도체, AI, 전기차 등에 4,217억 달러(약 590조 원)라는 천문학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민간의 기술·혁신 역량에 제조업 기반 확충을 위한 정부의 전략적 투자를 결합함으로써 첨단산업의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한 걸음 앞서가고 있다. 단순한 경제정책을 넘어 산업구조 재편을 추구하는 미국의 국가적 전략이다.

혁신 첨단산업 중심 산업구조 재편을 위한 과제
①선도적 정부투자, ②규제혁파, ③스케일업 산업생태계, ④기업인 존중 문화

우리도 첨단산업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에 적극 나서야 한다. 먼저 미래 전략산업에 대한 정부의 과감하고 선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첨단 신산업은 불확실성이 크고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만큼 민간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초기 R&D부터 인프라 구축, 인재양성 등 산업기반 조성에 공공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미국, 중국, 일본은 전력·용수·도로 등 필수 인프라는 물론 자국 첨단기업에 정부가 보조금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

둘째,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과거의 제도로는 글로벌 경제·산업 패러다임의 격변을 감당할 수 없다. 19세기 영국은 마차 위주의 낡은 제도를 고집하다가 자동차산업 주도권을 독일에 넘겨줬다. 유명한 ‘적기조례(Red Flag Act)’의 실패 사례이다. 시대에 뒤처진 낡은 규제,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의 해소가 시급하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현실에 안착할 수 있도록 제도의 유연성을 높이고 혁신을 포용할 새 그릇을 마련해야 한다. 규제시스템 자체를 재설계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스케일업(Scale up) 산업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창업부터 상용화, 글로벌 플레이어 도약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 튼튼한 성장 사다리 구축이 필요하다. 성장 의욕을 꺾는 기업 규모별 차별규제부터 정비해야 한다. 기업의 피터 팬 증후군을 해소하려면 정책의 패러다임을 ‘작은 기업 보호’에서 ‘성장하는 기업 지원’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기업인을 존중하는 사회문화 조성이다. 기업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고 국민소득도 없다. 위험을 감수하며 사업에 도전하고 기업을 성장시키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이다. 물론 기업인들도 존중을 받을만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준법과 윤리경영을 넘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여야 진정한 존중이 뒤따른다.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조성될 때, 유능한 젊은이들이 창업에 뛰어들 수 있다. 새로운 기업이 시장을 선도하고 튼튼한 산업생태계가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선순환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산중수복 의무로(山重水複 疑無路), 유암화명 우일촌(柳暗花明 又一村).” 재단법인 한국선진화포럼 설립자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자신의 서예 집에 남긴 구절이다. 산이 겹치고 물이 막혀 길이 없어 보여도, 그 너머에는 꽃피는 마을이 있다―구조적 침체의 먹구름이 드리운 오늘,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꿔내야 할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국선진화포럼은 남 전 총리의 실사구시 정신을 계승하며 자유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국가전략과 정책혁신을 선도해 왔다. 그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을 되살려 ‘침체(Recession)의 공포’를 극복하고 ‘재도약(Rebound)의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에 한국선진화포럼의 큰 공헌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