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제108차 국가정책토론회, 2016.11.24]


지난 60년간 우리나라는 눈부시게 성장해 왔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형성된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의 가장 큰 수혜자였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도입한 한국형 산업정책의 핵심은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데 있다. 수출주도형 산업화는 협소한 내수시장을 넘어 전 세계를 수요처로 삼음으로써 생산 규모 효율화와 학습효과 획득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수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과정을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앨리스 앰스든(Alice Amsden)이나 다니 로드릭(Dani Rodrik) 등 산업정책을 연구한 경제학자들이 한국형 산업정책의 성공 비결로 꼽는 요인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출주도형 전략이 정교했다 하더라도, 세계 시장이 열려있지 않았다면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은 세계적 경제통합의 더 큰 수혜자가 되었다. 1990년대는 세계화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다. 1993년의 유럽연합(EU) 출범, 1994년의 북미자유협정(NAFTA) 체결, 1995년의 WTO 설립 등이 이어지며, 경제통합이 시대정신이 되었다.

한국은 IMF 외환위기라는 큰 고비를 민간 주도 경제로의 과감한 체질 개선과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으로 극복하였으며,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글로벌 가치사슬(GVC)의 참여자를 넘어 중요한 한 축으로까지 성장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수출과 수입을 합친 무역 규모 비중은 GDP의 88%에 달하여 OECD 평균인 59%를 훌쩍 넘어서는 무역 중심 국가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의 성공 공식은 전례 없는 도전을 맞고 있다. 2010년대 이후 다시 변화하기 시작한 글로벌 경제질서의 흐름 때문이다. 사실 세계화의 진전이 늘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를 지배했다. 하지만,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 경제의 재건을 위해 자유무역 질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모아졌고, 1944년의 브레튼우즈 체제와 1947년의 GATT 협정은 이후 60여 년간 이어진 세계화의 주춧돌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의 추세는 눈에 띄게 꺾이기 시작했다. 이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침체와 중국경제의 내수 중심 재구조화 등이 나타나면서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의 동력이 약해진 점과,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의 불만이 정치세력화되면서 자국중심주의가 강화된 것 등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한때의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미·중 대결의 본격화, 코로나19 팬더믹과 공급망 위기, 러·우 전쟁, 트럼프 2기 출범 등이 이어지며, 보호무역주의와 큰 정부의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IMF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세계 각국은 2,500여 건이나 되는 산업정책 조치를 도입하였고, 그중 1,800여 건은 무역을 왜곡하는 성격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놀랍게도 그중 71%는 선진국이 도입한 정책이다.

미국과 EU, 중국만을 따로 합계해도 절반 정도가 된다. 내용도 국내 보조금, 수출 및 수입 장벽, 수출 보조금 등 WTO 체제에서 금기시되었던 정책들이 대다수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자유무역 질서쯤은 무시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이미 대세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세계화의 후퇴는 우리에게는 산업화 이후에 겪는 가장 큰 도전이 될 수도 있다. 하필이면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은 글로벌 산업정책 및 보호주의 경쟁의 핵심 대상이 되고 있다. 미·중 대결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우리의 지정학적, 경제적 위치를 고려하면 한 걸음 떨어져 거리를 유지하며 실리를 추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 한국선진화포럼 지암선진화아카데미 선진화다이얼로그, 2014.08.21.]


쉽게 답을 내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짚어야 할 점은 있다. 첫째, 지켜야 할 부분이다. 새로운 질서 하에서도 보호주의나 고립주의는 우리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개방화된 무역 중심 제조업 국가는 우리의 정체성이자 경쟁력이다. 보호무역 접근이 대세라고 해서 어설프게 따르다가는 몰락의 길을 재촉할 수 있다. 다행히도, 세계화가 주춤하고 있지만 보호무역이 자유무역을 대체할 만한 실질적 이익을 제공한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세계화의 흐름이 완전히 끊겼다고는 보지 않는 이유다.

둘째, 바꾸어야 할 부분이다. 앞의 내용과 모순되어 보일지 모르지만, 수출 제조업 일변도의 우리 산업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물건을 만들어 더 많이 수출하고 흑자를 내면 성장과 고용, 삶의 질 개선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내수 및 서비스 산업의 영세성과 생산성 부진으로 인한 불균형이 한국 경제의 무거운 족쇄가 된지 오래다. 보호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과감한 규제혁신과 체질 개선에 나섬으로써 내수 및 서비스 부문을 성장시켜야 한다.

셋째,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변화된 글로벌 질서 하에서 지금보다 적극적인 산업정책은 필요하지만, 신중하고 면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정 산업이나 분야를 밀어주는 정책에는 위험이 따른다. 래리 서머즈(Larry Summers) 전 미국 재무장관은 산업정책 참모는 좋은 장군과 유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고의 장군은 전쟁을 싫어하지만 필요할 때는 싸움에 나서는 사람이다. 민간 주도 성장이라는 큰 틀은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부문에만 그리고 효과가 입증된 방식으로 개입하는 스마트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나라를 일으켜 지금의 선진 한국을 일궈낸 선대의 업적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지혜와 이를 뒷받침할 실행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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