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상화된 지정학적 갈등에 트럼프 2.0까지 겹치면서, “아침에 저녁 상황을 예측할 수 없게(朝不慮夕 조불려석)” 됐다. 말 그대로 초불확실성(hyper-uncertainity)의 시대다. 주요국 모두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탐색하고, 정책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우리 경제도 급격한 대내외 환경 변화 속에서 다양한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으며, 과제의 난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추격형 모방경제 시대의 종언에 따른 저성장 추세, 저출산·고령화에 의한 인구·사회 문제, 구조개혁 지체에 기인한 비효율의 누적, 정치적 불확실성 등 수많은 문제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지각변동 수준으로 진행 중이고, 경제·기술·안보가 상호 연동하는 경제안보 시대를 헤쳐가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볼 때, 태생적으로 글로벌 분업 질서에 편입돼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도성장을 구가해 온 우리로서는 미증유의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그러나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 말처럼 피할 수 있는 위기도 없지만, 극복 못 할 위기도 없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는 ‘보이지 않는 손’과 함께 시장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보이는 정부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글로벌 경제의 대변혁기에 맞는 경제정책 청사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판박이 정책을 만병통치약처럼 꺼내 쓰지 말고, 새로운 정책환경에 맞서 일관성 있고 효율적인 카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주도력을 확보하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 핵심은 정책 경쟁력이다.

경제정책 담당자는 막연한 미움과 향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념과 진영을 떠나 접근하는 것이고, 향수에서 벗어나는 것은 과거의 성공 경험에 갇히지 말고 바뀐 세상을 직시하는 것이다.

특히 표를 겨냥한 대중영합적인 정책의 나열은 마치 한밤중에 잃어버린 자동차 열쇠를 찾기 위해 가로등 밑에서 서성대는 것과 같다.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기보다는 그곳이 가장 밝은 곳이니 맴도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나아갈 길과 해야 할 일을 경제정책에 제대로 담으려면, 출발점이 무엇보다도 지금 진행되는 정책환경의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첫째는 포용성이다. 20세기 대처 수상이나 레이건 대통령은 자유시장경제와 글로벌리즘이 모두에게 번영을 가져온다고 확신했을지 모르나, 21세기 정치지도자는 확대되는 불균형의 시정에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째, 기업 전략의 변화이다. 과거에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포함하는 공격적 경영전략을 구사했지만, 이제는 지정학적 위험 및 팬데믹 같은 재난에 대비하는 복원력(resilience)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재정립되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stakeholder capitalism)로 완전히 대체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ESG 경영에서 보듯이 사회적 가치 기반의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

셋째, ‘국가의 귀환'이란 표현에서 보듯이 정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소비자와 기업 등은 독립된 경제 주체로서 정부의 간섭 없이 서로 경쟁하지만, 사회적 도전 상황에서는 정부와 협력 파트너십을 발휘해야 한다. 백신의 개발·보급, 기후변화 대응, 기술 경쟁 등이 모두 그런 영역이다.

넷째, 경제안보 시대의 도래이다. 지금의 국제경제 질서는 글로벌리즘의 퇴조, 미·중 경제 및 기술 경쟁의 심화, 가치공유에 따른 새로운 경제동맹 모색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동안 세계화 흐름 속에서 세계 경제의 성장을 견인한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국가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게 되고 ‘경제를 위한 안보 (security for economy)’가 아닌 ‘안보를 위한 경제 (economy for security)’에 방점이 찍힌다.

다섯째, 산업정책의 부활이다. 주요 선진국은 이제 자국 산업기반 강화, 동맹 파트너국과의 탄력적 공급망 구축 및 새로운 협력체제의 모색 등을 포함하여 경쟁력 강화와 안보를 결합한 새로운 산업정책을 수립하여 첨단산업의 초경쟁력 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정책환경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경제정책 담당자는 어떠한 정책 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혁신과 경제안보 그리고 형평이라는 세 가지 축을 기둥 삼아 경제 재도약의 방안을 담아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의 미래는 기술혁신이 결정한다는 점에 이의가 있을 수 없으며, 혁신에 관하여 세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혁신은 연구개발에 바탕을 두어야 하나 전략은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행태과학, 인문학, 역사, 디자인 등 보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연구개발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들 간에 상호 학제적(interdisciplinary)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혁신은 경제 분야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AI 등의 활용에서 보듯이 사회적 혁신도 크게 대두될 것이다. 교육, 건강, 교통 등 생활과 밀접한 혁신이 경제혁신과 결합하여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제고하니 그만큼, 매우 포괄적인 혁신 전략이 요구된다.

셋째, 산업정책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효율화가 필요하다. 과거의 산업정책은 경제발전의 순기능도 하였으나 정부 주도의 산업 선정과 지원으로 중복투자의 비효율성, 정경유착, 대기업 집중도 심화, 도덕적 해이와 부실기업의 증대, 인플레 만연, 금융기관의 경쟁력 취약 등 부작용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안보 시대의 새로운 산업정책은 신기술에 의한 산업의 융합을 통해 산업 생태계의 확산과 발전을 유도하고, 민간의 혁신성장을 금융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지원하여야 하며, 양적확장보다는 질적인 혁신성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 다른 축은 경제안보이다. 경제안보의 정책적 함의도 셋으로 나눠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외교정책 기조는 경제안보 관점에서 재편돼야 한다. 경제안보에 기반한 통상외교정책의 방향은 궁극적으로 비차별적인 자유무역주의의 기본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국제무역체제를 정립하는 것이 기본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다자무역체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있는 현 상황에서의 차선책은 산업에 실효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 차원의 무역체제 및 부문별 협력 의제를 중심으로 협력할 뿐 아니라 주도적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제경제 질서의 현황을 고려할 때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반도체 공급망의 국제 공조를 위한 협력체제 구축 등과 같은 소다자적 (minilateralism) 무역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포괄적인 경제안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안보의 중요성은 첨단기술 관련 산업뿐만 아니라 원자재 등 천연자원, 식량, 환경 등도 해당되는 광범위한 이슈이므로 선진국뿐 아니라 개도국의 이해관계도 모두 반영된 균형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급망 리스크에 대한 전략 마련에 있어서도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공급원의 다변화 등 보편적인 접근방식과 함께 아시아 지역 공급망 강화 등 상황에 맞는 특수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정책수단에 있어서도 수입규제 및 수출 통제 등의 통상정책 수단뿐 아니라 투자규제조치를 비롯하여 공급망 재편과 산업육성정책과 같은 포괄적 형태의 경제안보 전략이 강구되어야 하겠다.

셋째, 국제경제 규범 수립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규범 수립을 주도하는 국가(rule-maker)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디지털 경제, 인프라 및 공급망 분야 등에서의 새로운 규범 수립 과정에 더욱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국제규범 수립을 통한 대외적 영향력을 확대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경제안보 목적에 최대한 부합하는 방향으로 규범화 노력에 동참하면서 자유시장 경제 체제의 보편적 가치를 토대로 국내 제도와 관행의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유연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경제안보 시대에는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축은 형평이다. 균형 경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불균형 문제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지만 세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불균형의 시정에 접근하는데 있어 우선 불평등이 성장의 부산물이라는 잘못된 견해를 버려야 한다. 경제의 양극화는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균형 경제로 가는 첫걸음은 안정적인 고용기회의 확대에 있다. 일자리 창출은 궁극적으로 시장과 기업부문에 달려 있다.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기업이 투자하지 않으면 일자리는 생겨나지 않는다. 정부는 보완적인 역할을 강화하여 노동부문의 유연안전성(flexicurity) 제고와 직업능력 향상 및 시장에서의 불공정한 여건을 시정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기술변화, 글로벌 현상의 심화, 인구구조의 변화 등으로 유발되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 심화에 대한 대응은 사후적 재분배 기능(re-distribution)과 병행하여 사전적 불평등 악화 개선(pre-distribution)과 관련된 제도의 정비도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해 보면 신경제질서하에서의 경제정책은 미움과 향수에서 벗어나 혁신과 경제안보 및 형평이라는 세 축을 기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달을 더 잘 보려고 사람들이 망원경 성능 경쟁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직접 가서 보지 뭐”라며 달나라로 가는 탐사선을 만들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망원경에서 탐사선으로 목표가 바뀌었기 때문에, 생각도 임무도 일하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이렇듯 “지금 아니면 언제? 내가 아니면 누가?”라는 심정으로 우리 경제를 재충전할 때 우리 경제의 재도약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정책담당자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패러다임의 전환에 목마른 자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