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출간한 남덕우 『한국, 과거를 딛고 미래를 보자』 중에서 발췌
이제 우리는 개화 운동, 근대화 운동의 역사적 발전 방향의 선상에서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 선진화 운동을 전개하려고 한다. 실은 100년 전 개화기의 문제의식과 오늘의 문제의식이 주제에 관한 한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한국은 지금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4강의 틈바구니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말 개화파의 고민과 같은 것이다.
개화파들은 두 가지 진로를 제시했다. 하나는 자강(自强)이고, 다른 하나는 식산흥업(殖産興業)이었다. 전자는 교육을 개혁하여 국민 대중으로 하여금 근대적인 국민의식을 지니도록 계몽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산업을 육성하여 경제력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의식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개화기의 문제의식과 오늘날의 문제의식의 주제가 같다 하더라도 지금의 선진화의 내용과 방법은 옛날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20세기 후반기 이후의 세계사의 조류는 △ 시장경제의 확대, △ 정보혁명, △ 민주화, △ 세계화, △ 자연환경에 대한 각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조류를 타고 경제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한 예에 속하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그를 가로막는 내외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로 정치 면에서는 후진적 정치문화로 대의정치의 운영이 난항을 겪고 있고, 국회가 민주사회의 다원화를 통합하는 본래의 기능을 다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둘째로 사회 면에서는 이념의 갈등, 집단적 이기주의, 계층 및 지역 간 격차와 대립, 노사 분규, 법치주의 이완, 국민교육 정책의 방황 등이 우리를 암울케 하고 있다.
셋째로 경제 면에서는 중국 경제의 도약으로 우리의 전통적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들이 자신의 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의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쉽지 않다.
수출이 성장의 버팀목이 되고 있지만 소수 품목에 집중되어 있고 소재와 부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서 고용 흡수력이 미약하여 청년 실업이 늘고 있다. 농업 개방이 불가피한데 농업의 기업화, 과학화 요구에 적응하지 못한 농민들은 실의에 빠져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모르는 지식인은 없다. 그러나 문제 해결 방법은 결코 단순치 않다. 민주화된 오늘의 사회에 있어서는 모든 문제마다 이해관계와 견해가 대립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앞에서 ‘합리적 결론’이라 하였는데, 그 궁극의 기준은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의 원리일 수밖에 없다. 자유를 제도화한 것이 민주적 대의정치와 시장 경제체제인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국가이념이자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경제 운용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자율과 경쟁의 원칙, 둘째는 공정 경쟁의 원칙, 셋째는 균형과 형평의 원칙, 넷째는 시장 보완의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선진화를 염원하는 식자들의 할 일이다.
선진화의 과제는 산적해 있지만 다행히 많은 단체가 같은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또 과거의 경험이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은 우리의 선인들이 직면한 것처럼 혹독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앞길에 장애물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나라의 선진화를 촉진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허구적 관념을 배격하고 실사구시의 가치관으로 나라의 앞날을 개척해야 한다는 개화기 선각자들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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