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 포커스 316>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문화예술교육
 
주성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음악학)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육체적 노동을 넘어 정신노동을 대신하는 기술과 기계가 등장한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로 인하여 인간다움의 정체성은 도전받고 기술과 기계를 활용하는 인간적 능력에 따라 성패가 가늠되는 시대가 되었다고들 한다. 인간은 기계의 단순 작동능력을 넘어 기계와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고 응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를 위하여 중요한 이해력과 판단력, 응용력, 가치관의 형성은 대인관계와 사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형성과 밀접하다. 문해력과 정보처리능력을 넘어서서 소통(타인의 이해)과 리더십, 성찰과 비판적 사고,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갖춘 인재가 요구되는 시대에서 교육은 과학기술의 정보 습득을 넘어 인문적 영역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창의·인성교육을 강조하던 우리는 수년 전부터 예술의 교육(education of arts)과 예술을 통한 교육(education through arts)을 거론하면서 STEAM교육 혹은 예술융합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술의 향유력 신장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예술이 지닌 자유로운 상상력과 도전하는 즐거움, 다른 이의 표현에 대한 포용적 공감능력 등으로 인하여 예술의 교육은 다른 배움을 위해서도 중요한 통로로 인식되고 있다.

예술교육은 예술가 뿐 아니라 예술을 누릴 권리가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사회 곳곳의 다양한 인재 양성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받는다. 예술교육과 창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기대가 이렇듯 커지는 만큼, 예술교육은 이제 스스로도 창의적이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십여 년 전 우리 교육계에 “창의·인성교육”이라는 정책용어가 등장하였던 것은 우리의 수학·과학교육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웠던 것은, 예술도 수학이나 과학 교육처럼 창의성의 계발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새로운 교육을 새삼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예술은 인간의 대표적 창조 활동이므로 예술을 교육하면 당연히 창의성이 키워지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그저 선생님을 따라하고 주어진 것을 외우기만 하는 교육이 수학이나 과학 교실에서처럼 예술교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틀렸어, 다시 해봐.” 옳고 그름을 평가하며 반복훈련을 지시하는 다수의 우리 예술교육 현장에서 예술은 정답이 있는 무엇이고, 신나서 덤비기보다 견뎌내야만 하는 어려운 도전이 되어 때로는 학습자를 위축시키고 좌절하게 하는 두려운 존재가 되곤 했다.

예술에 몰입하고 즐길 줄 아는 삶이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고, 함께 하는 행복을 느끼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다시 일으키면서 풍요로울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예술이 삶에서 깨닫게 하는 가치에 대해 우리는 공감을 하면서도, 예술의 교육은 학습자로 하여금 예술이 지닌 힘을 느끼기보다 기술을 연마하는 것에 더 관심을 쏟는다. 재료와 매체를 다루는 기능의 세계가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호기심을 일으키고 예술이 지닌 감동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교육이라면 학습자의 배움은 더 즐겁고 더 깊어질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주어진 대본을 외우고 선생님의 지시대로 동작을 익히는 대신에 관심사와 생각을 담아 아이들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고 동작과 의상, 무대의 표현 방법을 찾으면서 연극을 만드는 학습이 늘어나고 있다. 선생님의 시연을 따라 분절된 움직임을 수없이 되풀이 하며 기술을 익히는 대신에 자신의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을 스스로 느끼고 관찰하면서 공간 사용법을 익히는 새로운 접근법의 무용교육도 등장했다. 외우고 따라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담고 스스로 표현하는 일에 시간을 쏟는 학습에서 아이들은 더 큰 흥미를 느끼며 빠져들고, 나아가 한 사람의 작은 예술가로서 또 다른 기술의 습득에 대한 바람을 자연스레 품는다.

심화된 예술교육의 단계에서도 교육은 변화하고 있다. 예술가에게는 매체를 다루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전통을 계승할 뿐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는 능력과 상상력의 자유로운 세계를 여는 능력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문화로서(의) 예술 arts as culture’을 바라보게 훈련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예술가를 훈련하는데 유익한 도구이자 예술을 사람의 활동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호기심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애호가를 위한 교육이기도 하다.

2005년에 제정된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을 근거로 정부가 확산을 주도해 온 문화예술교육은 앞서 말한 새로운 예술교육, 특히 ‘문화로서의 예술’에 대한 교육과 동의어인 것으로 종종 이해된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의 출발은 ‘시민사회의 문화운동과 정부의 문화정책이 만나면서 실체화’(김형수 외, 2010)된 것으로, ’궁극적 목적은 문화교육’(이동연 문화연대 소장, 2003)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예술교육으로서 종종 질적 논란을 야기하고, 예술교육 및 문화교육에 대한 모호한 정체성으로 교육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비록 문화예술교육과 예술교육의 차별성이 구체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학교의 예술교육을 문화예술교육으로 대체하자는 최근의 움직임은 그래서 우려를 낳는다. ‘사회의 위기와 불평등의 세계화를 심화시키는 기존의 교육시스템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자율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김형수외, 2010)은 고유한 예술언어의 감수성과 상상력의 확장 학습 기회는 줄어든 채 이어지는 언어적 메시지를 이해하고 학습자가 적당히 표현하는 정도에 머무르게 될 위험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에 문화를 더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안의 문화적 면모를 충분히 탐색하는 일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설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이슈에 예술활동을 덧붙이는 형태보다 나에 대한 성찰로부터 솟아나는 표현 활동은 물론이고, 특정한 예술의 문법과 양식, 공연이나 전시 행위에 깃든 사람들의 사연과 사회 가치관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학습, 예술가와 내 친구를 포함한 타인의 작품에서 타인의 의도와 노력을 읽는 연습 등 ‘예술에 내재하는 사람’에 대한 공부는 기능을 연마하고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는 일을 포함하여 모두 ‘문화로서의 예술(arts as culture)’에 대한 학습이 될 수 있다.

‘문화로서의 예술’의 교육은 예술교육을 대신하는 새로운 교육이 아니라 표현기술의 습득에 치중하는 현재의 예술교육을 보다 온전하게 하는 보완적 교육일 것이다. 사회의 변화·개선을 위해 쟁점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예술을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사회문화적 산물로 이해하고 다가섬으로 해서 타인의 예술활동에 대해 호기심을 일으키고 자신 또한 예술적 소통에 참여하고 싶어지도록 이끄는 교육, 그리하여 스스로 타인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예술에 집중하고 예술활동에 담기는 나와 타인의 의미에 집중하는 사이,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지고 학습자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예술활동화하는 능력을 자율적으로 서서히 축적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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