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선진화를 위하여
Q 우리나라는 고속성장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세부적인 부분엔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A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사의 조류는 ①시장경제의 확대, ②정보혁명, ③민주화, ④세계화, ⑤자연환경에 대한 각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조류를 타고 경제 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한 예에 속하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여러 가지 대내외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치면에서는 후진적 정치문화로 대의정치 운영이 난맥 상태에 있습니다. 국회는 민주사회의 다원화를 통합하는 본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회면에서는 이념의 갈등, 집단적 이기주의, 계층ㆍ지역 간 격차와 대립, 노사 분규, 법치주의 이완, 국민교육정책의 방황 등이 우리를 암울케 하고 있습니다.
셋째, 경제면에 있어서는 브릭스(BRICs) 경제의 도약으로 우리의 전통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수출이 성장의 버팀목이 되고 있지만 소수 품목에 집중되어 있고 소재와 부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내수와 고용 유발 효과가 적습니다. 그래서 청년 실업이 늘고 있습니다. 농업개방이 불가피한데 농업의 시대적 요구인 기업화, 과학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많은 농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Q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한국선진화포럼을 창설하셨는데, 포럼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이미 다른 기회에 말한 것처럼 우리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선진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①1인당 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이 되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②대의(代議) 정치가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과 이해 관계를 평화적으로 조정하고 부단히 정의를 추구하며 ③법 집행이 엄격하여 사회질서가 확립되어 있고 ④문화와 예술이 발달하여 국제 사회의 존경을 받고 ⑤결과적으로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고, 공평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선진화 운동의 목표입니다.
Q 이 운동에 많은 젊은이들이 동참하기를 바라고 계신데 그러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A 젊은이들이 선진화 운동에 동참하자면 이념에 대한 혼란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사회주의는 진보이고 자본주의는 보수라는 낡은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회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네덜란드의 노동당)들 중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고 북한의 사회주의를 진보라고 보는 나라도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무조건 자본주의를 보수라고 본다면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보수당인 공화당과 진보적인 민주당이 양립하고 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한편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나라 중에서 사유재산과 기업 활동에 규제를 가하지 않는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요컨대 지구상에는 순수한 사회주의도 없고 순수한 자본주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양자의 개념적 특성이 혼합된 체제(Mixed System)가 있을 뿐이지만,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와 진보라는 말 대신 좌파와 우파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Q 총리께서는 우리나라의 이념갈등을 어떻게 보십니까?
A 나는 이념 문제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무릇 인간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있습니다. ‘빵과 자유와 안전’입니다. ‘빵’(물질)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자유’가 없으면 사는 보람이 없고, ‘안전’이 없으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이 사유이고, 자유 시장에서 이윤을 목적으로 재화와 용역이 경쟁적으로 생산되고, 소득은 이윤, 임금으로 대별됩니다. (단, 자연자원을 지배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지대’라는 특별한 범주의 소득도 있음) 경쟁, 이윤, 가격, 임금이 자본주의의 주요 요소인데 민주적 자본주의 하에서는 빵과 자유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소련 사회주의는 빵과 자유를 양립 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으면 그 배분과 용도를 정부가 결정할 수 밖에 없게 되고 따라서 국민들의 자발적 선택의 여지는 극도로 제한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생산하고 싶어도 정부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정부의 의사에 따라 인적, 물적 자원의 용도가 결정되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마저 잃게 됩니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정부 당국은 직물 공장에 사람이 모자라니 그곳으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빵을 얻기 위하여 자유를 포기해야만 했던 소련 국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소련체제가 붕괴하고 만 것입니다.
Q 그러나 사회주의에 사장경제 원리를 가미한 나라도 있지 않습니까?
A 사회주의 국가 중에는 자원과 생산수단을 국가 소유로 하되 자원 배분에 있어서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고자 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해 본 나라도 있습니다. 그 예로, 1920년대 소련의 신경제정책(NEP)과 1950-60년대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제체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실험은 단기로 끝났고 그 결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주된 이유는 이 체제 역시 인간의 자유를 지나치게 구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얻은 소득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는 권리와 자유가 없으면 땀 흘려 일하거나 창의를 발휘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됩니다.
이 국가들의 국영 기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능률적인 운영을 한 사실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 줍니다. 지금 중국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앙집권적 자본주의 경제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Q 그러면 시장경제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A 물론 문제가 많습니다. 시장경제는 자유와 경쟁을 속성으로 합니다. 그런데 경쟁이 있으면 반드시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2원화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자유 시장경제 체제의 기본과제가 됩니다.
만약 패자와 약자, 그리고 빈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사회적 안정을 유지 할 수 없고, 공권력과 강제적 수단으로 사회 안정을 유지하려 한다면 자유는 말살(抹殺)되고 맙니다. 반면 패자와 약자, 빈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강자와 승자, 부자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면 발전과 진보가 없어집니다. 부자를 백안시하면 부를 축적하여 큰 일을 해보겠다는 기업가 정신이 죽고, 경제사회의 발전을 어렵게 합니다.
아산 병원이나 삼성 병원을 가보면 정주영씨나 이병철씨의 기업가 정신이 없었다면 과연 이러한 선진국 수준의 병원이 세워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의료 수가를 일률적으로 통제하면 내과, 외과와 같은 위험 부담이 큰 의료 분야를 지망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 것입니다. 결국 의사가 부족하여 서민층을 위한 의료 서비스의 개선도 바랄 수 없게 돼 의학의 발전이 저해됩니다.
그러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결합되어 있을 때에는 1인 1표의 선거와 대의정치(代議政治)를 통하여 시장경제의 내재적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민주적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다양한 사회복지제도의 실현과 빈자(貧者)를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 국가의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공정경쟁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주고 그 규칙을 위반한 자를 제재하는 동시에, 약자를 보호하고, 경제 변수 간의 거시적 균형(성장과 분배, 국제수지, 재정수지 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Q 현재 우리나라는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제 위기, 대내적으로는 좌우갈등, 집단이기주의 등으로 선진국가로 발돋움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과연 우리나라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A 우리나라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충분히 있다고 믿습니다. 정치적 혼란과 매일 같이 보도되는 사회악을 보면 비관할 만도 하죠. 그러나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으로 다음과 같은 점들이 있습니다.
① 우수한 민족적 자질: Sports, K-pop, 한류 등을 보세요. 한국사람은 무엇이든 하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② 왕성한 도전 정신: 우리나라는 자동차, 선박, IT 산업 강국이며, 인터넷, 스마트폰 보급률은 미국, 일본보다도 높습니다.
③ 높은 교육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④ Dynamism: 서로 헐뜯고, 싸우고, 말썽이 많은 사회이지만, 한국사회는 계속 전진해 왔습니다.
Q 지금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나라 걱정을 하기보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펙을 쌓는 등 개인적인 문제에 골몰하고 점차 탈정치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진화나 이념 같은 문제를 깊게 고민하기 보다는 단순히 여론에 휩쓸리거나 선입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젊은층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 같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사회 구조적으로는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살아가자면 공동체가 존립하기 위한 기본적 가치가 무엇이고 그 가치를 위해 개인이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는 와해(瓦解)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이 점을 실천적으로 가르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미국은 다수의 민족이 공존하는 Melting Pot(인종의 용광로)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하며 그것이 국민 단합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은 국가 이념을 생활화하게 만드는 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빵(물질)과 자유라고 말했는데 자유에 관하여는 그 깊은 뜻을 가르치고 빵에 관하여는 경제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경제학을 대학 교육의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선택 과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 문제에 대한 이해와 의견 통합이 매우 어렵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취직이 어려우니 그것이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겠지요. 이것은 국가적인 문제이므로 주로 국가 경제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해결방안에 관하여는 지난 질의응답에서 사견을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취직이 어렵다 하여 내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노력의 방향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시간의 낭비입니다. 더욱이 여론에 휩쓸려 나의 인생을 값싸게 팔아 넘겨서야 되겠습니까?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체념하지 말고 자신의 문제부터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귀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Q 복지국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위하여 선행되거나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 듯 합니다. 스웨덴이든 아르헨티나든 모두 성장 위주의 시장 친화적 정책을 통해 국력을 키운 후 복지 정책을 택했지, 처음부터 복지 정책을 시행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이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총리께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복지국가, 선진화의 관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신지 답변을 청합니다.
A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적 대의정치와 시장경제를 양 축으로 하고 있고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적 대의 정치과정을 통해 다양한 복지제도를 창설,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웨덴도 예외는 아닙니다. 복지국가라는 국가 형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복지제도가 잘 마련된 나라를 비유적으로 복지국가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선행될 수 있으나 복지국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하여 선행되거나 이를 도울 수 있는 개념이 아닌 듯”하다는 귀하의 말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한국선진화포럼에서 자유민주 시장경제→복지국가 대신, 복지국가→자유민주 시장경제라는 전도된 주장을 한 발표자나 토론자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선진화포럼의 목적이 “①1인당 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이 되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②대의(代議) 정치가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평화적으로 조절하고 부단히 정의를 추구하며, ③법 집행이 엄격하여 사회질서가 확립되어 있고, ④문화와 예술이 발달하여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고, ⑤결과적으로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고, 공평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선진화 운동의 목표이다”라고 한 것은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대전제로 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자유민주와 시장경제가 아니고서는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Q총리께서는 선진화 목표의 하나로 정치가 부단히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정의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총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Michael J. Sandel 의 <정의>라는 책 (한국판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니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됩니다. Sandel은 2300년 전의 Aristotle 이후 20세기까지의 저명한 철학자들의 정의론을 검토했는데 ‘정의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일의적(一義的)인 대답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 가치관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Aristotle에 따르면 마땅히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줄 것을 주는 것이 정의입니다. 예컨대 피리는 피리를 잘 부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정의입니다.
자유주의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J. Locke는 천부의 자연권 (생명, 자유, 재산)을 존중하는 것이 정의이고, E. Kant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대하고, 어떠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옳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 정의라 하였습니다. J. Bentham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 정의이고, 20세기의 철학자 John Rawls 는 모든 사람이 합의한 규칙은 모두가 아무런 특권 없이 평등한 위치에서 지키는 평등적 자유가 정의라 했습니다.
Sandel은 이상과 같은 정의론을 검토한 한 끝에 Aristotle의 이념으로 되돌아가서 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한 정체성- ‘나는 한국인이다’-을 지닌 사람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역사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발적 혹은 보편적 의무와 더불어 그가 속하는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충성의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보편적 의무와 충돌하는 경우가 있으니 또 다시 무엇이 공동선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행복, 자유, 미덕을 생각할 수 있는데 행복을 극대화하려고 하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공동체의 미덕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같이 이성적으로 공동선을 논의하여 합의점을 도출할 수 밖에 없고 그러자면 반론에 대하여도 따뜻하게 대하는 공공문화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법률은 가치 중립적 이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법률은 도덕문제에 대하여 중립적일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도덕적 신념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론해 가는 것이 정의 사회로 가는 최선의 길이다” 라고 Sandel은 결론 지었습니다.
여기에서 인도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고 하버드대학 교수로서 <정의의 개념>이라는 책을 쓴 Amartya Sen 교수의 한 마디가 생각납니다. “완전한 정의를 모색하기보다는 확실한 부정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관하여 “발전의 결과물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빈곤 계층을 보호할 사회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화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단히 공동선을 추구하고 잘 알려진 부정을 추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