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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토론회

제98차 월례토론회

헬조선, 출구는 있는가?

발제 : 곽금주(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2015년 11월 20일
명동 은행회관 2층 국제회의실

「헬조선, 출구는 있는가?」

한국선진화포럼 정책제안

1.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헬조선의 원인

헬조선은 “헬(hell)+조선(朝鮮)=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자조적 표현이다. 이는 입시지옥, 취업난, 고물가, 차별과 부조리가 만연한 지옥 같은 한국 사회를 비난하기 위해 청년층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대한민국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원인(엠브레인, 2015)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어서 (50.6%)”, “공평하지가 않아서 (24.4%)”, “빈부격차가 심해서 (15.7%)”, “경쟁이 심해서 (9.3%)” 순으로 나타났다.

헬조선의 큰 특징 세가지로는 비교경쟁 사회, 서열 사회, 절망 사회가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파악한다. 이는 자신의 생존과 생산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도록 도와 주기 때문에 진화되어 온 본능이다. 사람들은 비교를 할 때 자신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사람을 참조하여 자신과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향비교는 개인에게 성취 동기를 부여하고 발전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비교 대상과의 차이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나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면, 열등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2013년 고려대학교 강평원 등은 한국인과 미국인을 대상으로 사회 비교를 할 때 나타나는 차이를 뇌 영상을 통해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미국인들과는 다르게 한국인들은 자신이 받은 보상의 절대적 값보다는 상대방이랑 비교하여 보상의 값어치를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인들은 조금 보상 받아도 남보다만 많이 받으면 괜찮고, 많이 받아도 남보다 적으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열은 문화 보편적이다. 외국에서는 직장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기도 한다. 서열은 문화 보편적 일뿐만 아니라 종 보편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원숭이 세계에서도 서열이 있다. 서열화는 진화심리학적으로 다양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서열화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원의 분배를 순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 갈등을 줄인다. 서열화는 통제력이나 책임감에 대한 배분이 다르기 때문에 “주방에 너무 많은 요리사가 있는” 문제를 줄여준다. 계급이 정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모니터링하고 검사할 때 노력을 덜 기울여도 되기 때문에 정보처리가 쉽고 빠르다. 서열화는 서열이 높은 사람에게는 그 자리에 계속 더 머무를 수 있게끔 열심히 노력하는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동시에 서열이 낮은 사람에게는 더 열심히 노력하여 높은 서열에 올라가고 싶은 발전의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다양한 이점이 있는 서열화 사회가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된 이유는 배경에 따라 서열을 매기기 때문이다. 배경에 따라 서열을 매긴 것의 대표적인 예가 수저계급론이다. 최근 동국대학교 김낙년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 전체 재산에서 상속 증여로 취득한 재산 비중이 1980년대에는 연평균 27%였지만 2000년대에는 42%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인의 소득은 비슷하지만 자산을 상속받는 사람들이 있어 배경에 따른 서열화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소득은 비슷하여도 상속에 따라 재산이 크게 달라지므로 배경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비록 아직 한국은 프랑스나 영국보다는 그 정도가 낮지만 이 추세라면 곧 앞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국제정치사회 비교조사(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 ISSP) 프로그램의 2009년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부유한 가족 출신이 중요하다’ 라는 질문에 10명 중 8명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핀란드보다 2.6배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결과이다.

중국 북경대학교 심리학과는 이처럼 개인의 능력이 아닌 부유한 가족 출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를 뇌 활성화 분석을 이용해 연구하였다. 연구결과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은 자신이 아닌 가족을 생각할 때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경향은 개인을 판단할 때 그 배경까지 함께 판단하도록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서열 기준은 외국과 다르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중산층 정의를 비교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퐁피두 전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저서 ‘삶의 질’에서 중산층의 기준을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할 것,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할 것,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할 것, 근사하게 대접할 수 있는 요리 실력을 갖춰야 할 것,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등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는 페어플레이 정신, 불의나 불법에 맞서는 것, 약자를 보호할 것 등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BBC방송은 지난해 인맥 등의 사회적 자본, 문화적 자본을 기준에 포함시켜 중산층을 구분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국은 개인의 인성과 교양에 따라 중산층을 정의하지만 우리나라는 돈이나 자산으로 중산층을 정의하고 있다. 과거 국내 한 취업 포털 사이트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부채 없이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월급 500만원 이상, 2000cc급 중형 자동차 이상, 예금 1억원 이상’ 등이 중산층의 기준이었는데 이는 모두 돈과 관련 있는 경제적 지표이다.

학습된 무력감은 개인을 우울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상황과 환경까지 일반화 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위험하다. 즉, 학습된 무력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좌절한 한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 전체에서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무력감 전염현상은 현 대한민국 청년들을 n포 세대라고 부르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30세대 10 명 중 7명이 자신이 n포 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음. 3포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이고, 5포 세대는 집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세대임. n포 세대는 무한대로 이것저것 다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세대를 일컫는다. 청년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 현상은 나 몰라 효과(What the Hell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나 몰라 효과는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식욕을 잘 억제하고 있다가 한입을 먹고는 다이어트를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하여 폭식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외부적인 요인도 크지만 이처럼 청년들은 취업이 되지 않자, 좌절하고 다른 많은 것을 완전히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2. 경제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헬조선의 원인

헬조선의 원인으로는 비교/경쟁사회를 들 수 있다. 적군 vs 아군, 정규직 vs 비정규직, 직접고용 vs 간접고용, 나의 불행은 남 탓 등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만연해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노동시장에서 차이(생산성 격차)도 차별(불공정한 임금, 승진기회 차별)로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생산성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는 공정한 노동시장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으며, 경영진의 불공정한 인사관리는 근로자의 불공정한 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이중노동시장 구조는 위의 헬조선 심리를 확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정상적인 서열화가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연공서열, 장시간근로 근면문화를 중시하였다면 BRAVO (Broad network, Reward-sensitive, Adaptable, Voice, Oriented to myself) 세대는 성과주의, 개인주의, 웰빙문화 등을 중시한다. 베이비붐 세대인 상사와 BRAVO세대인 부하직원간의 심리적 충돌 가능성이 크다. 베이붐 세대에게는 성과, 가정, 행복, 삶의 의미 등 인식, BRAVO 세대에는 공동체 인식, 의리, 진정한 친구 등 결핍문화의 보충이 필요하다.

3. 결론: 정책적 시사점

헬(HELL)조선을 힐(HEAL)조선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배분(Allocation)이 중요하다. 한 심리학적 연구는 보상관련 실험을 통해 보상빈도가 높을 때 도전과 행동의 횟수도 높아짐을 발견하였다. 즉, 힐조선 하기 위해서는 보상을 자주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물질적인 보상은 그 종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물질 보상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신적 보상과 기회를 통해 보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사는 신입사원이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였을 때에만 크게 칭찬하는 것보다 매번 과제를 마무리했을 때 조금의 칭찬을 하는 더 효과적인 정신적 보상이 된다. 또한, 한번에 길게 휴가를 주는 것도 좋지만, 나누어서 자주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또한, 헬(Hell) 조선을 힐(Heal) 조선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계급에 따른 핸디캡을 배분하여 보상을 상대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똑같이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도 좋지만 둘 중 한 명에게만 줘야 한다면, 가난을 극복하고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케이스들을 늘려 개천에서 용난 남자 혹은 여자(개룡남, 개룡녀)를 많이 만들면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계급에 따라 책임과 의무를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높은 계급에게 권력이 아닌 권위를 주어 자신의 계급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취업에 정신이 시들어가 기성세대의 힐링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이는 현재상태를 극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Heal을 넘어서 Fair, Care, Share의 실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진정한 노동개혁, 진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진정한 상생나눔이 확산되어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라사랑”의 실천이 가능할 것이다.

수저론 계급론, 헬조선론은 단순히 부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넋두리가 아니며, 사회·경제체제의 경쟁을 지속시킴으로써 발전을 구현하기 위한 ‘게임의 규칙’에 대한 공정성 인식이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위험한 신호이다.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 건전한 경쟁체제 유지를 통한 사회·경제 생태계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배분적 정의도 필요하지만, 공정한 사회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정의도 필요하다.

공정한 사회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유시장경제체제와 민주화된 사회질서를 바탕으로 다양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불공정한 게임의 규칙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역량에 따라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경제·사회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제도의 질(quality)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며, 특히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공정한 경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모든 사회구성원의 참여와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의 구현은 사회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핵심 가치이다. 이를 위해 어느 한쪽이 이익을 얻게 되면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제도의 질 개선을 통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정합게임(positive sum)을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정한 사회란 쉽게 이야기하면, 능력이나 역량이 유사한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유사한 사회를 의미한다.

결국, 공익과 법치를 강조하되, 공익을 추구한다는 것이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면서도 다수의 이익과 의견뿐 아니라 소수의 이익과 의견도 소외되지 않게 하는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또, 법치의 강조가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공고하게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공익을 추구하는 것일 때 대한민국의 공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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